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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동

이쥬인 아키라가 종적을 감추고, 7일.

실종 신고는 내지 않았다. 연기처럼 나타나 흩어지듯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다시 현관문이 열리고, 가라앉은 공기가 번잡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살던 집의 차갑게 식은 침대 시트. 남겨진 이는 〈남겨졌다〉는 자각 없이 일상을 영유하고 있었다. 반쯤 데운 레토르트 식품, 머그컵 아래 눌어붙은 커피 자국. 놀이터에서 장난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베란다 너머서 울린다…….〈그러고 보면, 문패에는 나의 성을 적지 않았던가.〉 정적을 피하고자 틀어둔 TV에서 허무맹랑한 광고가 나열되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싸워 곤란하신가요? 〈예전의 그 사람답지 않아서〉 불만이신가요? 저희 행동 교정 프로그램이 당신의 추억을 되돌려드립니다. 그저 강하게 소원하는 마음과 함께, 버튼을 한 번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당신이 원하는 대로 시작할 수 있다면…….」

시로이 키쿠는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 액정에 한 번 눈길을 주다가, 그만둔다.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내가 원하는 대로 시작할 수 있다면.」 CF의 마지막 문장을 의미 없이 곱씹고, 채널을 돌렸다.

동시에 인터폰이 울렸다.

 

거실 테이블에서 현관문까지 이동하는 짧은 순간, 손잡이를 돌려 맑은 가을 공기를 마주했을 때 배달원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의 공백엔 커다란 박스가 놓였다. 세탁기가 들어갈 정도의 상자를 검은 테이프로 몇 번이나 감아 포장한, 기묘하게 무겁고 온기가 느껴지는 소포를 그는 별 의문 없이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가전제품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무게가 있다. 어쩌면 아키라의 물건일지도 모른다. 연락을 끊고, 키쿠의 관심을 끌어모으길 바라는 생각일지 모른다. 상자엔 그 답이 담겨 있을지 모르고. 익숙한 일이었다. 아키라라는 사람의 본연 성질이나 원리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하면서도 그의 행동만큼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받는 이와 보내는 이의 이름을 확인했다. 역시나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다. 키쿠는 공업용 커터를 가져와, 그에게 주어진 선물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하얀 레이스로 장식된 공단 속에서, 아마빛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나, 내리감긴 눈, 바짝 깎은 손톱. 몇 번이고 만져 익숙해진 감촉이 이질적으로 와닿는다. 금방이라도 호흡할 듯 살짝 벌어진 입술에선 어떠한 숨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방금까지 누군가 꽉 안고 있었던 것처럼 미지근한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의식중, 탄식과도 비슷한 한숨을 뱉는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한참 벗어난 상황. 〈죽은 것처럼〉 돌아온 연인을 바른 곳에 눕혀주어야겠다는 생각 하나 떠올리지 못한 채 그는 오랫동안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오롯이 울리는 자신의 맥박, 그리고 시계 초침 소리를 의식하게 되었을 때, 침착하게 상대를 재확인했다. 〈시체〉라는 표현을 떠올려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아직 서로에게 건 것이 많았다. 언제까지 이 동거를, 도박을 지속할지. 사랑하는 행위가 연극이라면 이 집이 우리의 무대라면, 먼저 그만두겠다 선언하는 사람이 패자가 된다면, 그때는 무엇을 지불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마저 협상하지 않았다. 이런 형태로 되돌아오는 것은 명백히 〈규칙 위반〉이었다.

그런, 자기합리화와 현실 도피.

키쿠는 아키라의 관에 눕듯 포개진 두 손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낸다. 트럼프 카드의 조커. 뒷면에 얇은 매직 펜으로 작성한 글씨. 익숙한 필체로

 

「제가 졌어요. 이건 그 판돈입니다.」

 

꽉 쥐고 있던 물건이 사라지자, 아키라의 손이 키쿠의 몸 위로 흘러내린다. 물고기 살을 도려낸 것처럼 하얗기만 하던 손목에, 어설프게 바느질된 것처럼 단어가 쓰인 버튼 하나가 박혀 있다.

이제 열 자의 알파벳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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