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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결혼반지가 빠지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하지?

 

테이블 위에 흩어진 재료를 둘러보다가, 아키라가 뱉은 말이었다. 케이크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밀가루를 안 사 왔어요. 맙소사. 이어지는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기는… 늘어지는 문장을 마무리짓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도박에서 손가락을 건다면요. 네 번째 손가락을 걸고 반지까지 잃게 되면 어떻게 해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걸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시겠지. 너는 대답 대신 웃는다. 의자에 걸쳐두었던 외투를 다시 입고 지갑을 든다. 나갔다 올 거야? 그가 질문한다.

 

얼마 안 걸릴 테니까.

그래요.

 

창 너머를 바라보는 눈이 조용하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할 때 드러나는 습관임을 알고 있다. 도움이 되는 소릴 해야겠다고 여기며 습관을 저지른다. 행복하십니까?

네?

행복하냐고요, 지금.

행복해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한 투였다. 단순하고 명쾌했다. 늘 침체되어 있던 목소리가 가벼웠다. 하지만 수백 번의 물음 중에서 그가 행복하다는 답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너는 십일월에 결혼했고 그 계절을 가을이라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가끔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날이 돌아오면 하늘은 탁한 잿빛이고, 어쩌면 이른 눈이 내릴 수도 있고. 눈이 녹아 비가 내릴지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는 일은 잘 없으니까. 예전의 아키라는…….

 

하지만 오늘은 날이 좋잖아요. 사고를 멈추라는 듯한, 읽은 듯한 이야기. 일주일 만에 하늘이 푸르고 공기가 따뜻하네요.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혼자였다면 분명 재즈 음악을 들었을 거예요. … 다시 같이 나갈까요?

괜찮습니다. 정말, 얼마 안 걸릴 테니까요.

그렇겠네요.

답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은데. 다녀온 후에…….

 

그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고 너를 올려다본다. 느슨하게 웃는다. 불 꺼진 방에 오후 다섯 시의 해가 스며들어 그의 이마를 가로지른다. 눈부신 듯 깜빡이고 중얼거린다. 다녀와. 그는 빠지지 않게 된 결혼반지를 오른손으로 쓸어내리듯이 덮는다.

 

예전의 그는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행복하기 위해서 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고 따라서 모든 것을 그만두자는 선언을 저녁 식사 약속을 잡듯 쉽게 말했다. 그다음엔 자신을 죽이겠다는 소릴 타는 쓰레기 내놓는 요일을 알리듯 말했다. 생활이 안정되고 몸이 온전해질수록 무언가 기쁘다는 말을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돌려했다. 지금 죽으면 행복하게 끝날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은 아주 넓고 그깟 세상조차 훨씬 더 넓은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하지만 넓은 우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게 전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이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가 없다.

자신이 그에게 해 준 것이 그를 바꾸었다는 생각을, 오만하게도 믿고 있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런 것인지 모른다. 그의 머리카락 끝을 만져보다가 거실에서 빠져나온다. 문을 닫고 가게로, 바깥으로 향한다.

 

 

그리고 네가 나간 다음, 아키라는 두 사람의 옷장에서 리넨 천으로 감싸인 상자를 꺼낸다. 머리를 올려 묶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발코니 난간을 넘어선다.

뛰어내린다.